수업관련

종강 메시지 (2024 가을, 정치와 정치이념)

Minhyeok.Kim 2025. 3. 1. 21:26

종강 메시지 (2024 가을, 정치와 정치이념)

 

다들 무사히 학기를 잘 마치셨길 바랍니다. 저도 모든 수강생께서 기말고사 답안을 제출해주셔서 안도감을 느끼며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한 이번 학기를 뒤돌아봅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강의평가>가 진행되고 있으니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평가에 남겨주세요. 꼼꼼히 읽으며 더 좋은 강의를 위해 소중히 참고하겠습니다. 아래에서는 종강을 맞이해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소 두서없이 (그리고 다소 길게) 남겨보려 합니다. 


1) 종강 소감
우선, 수업을 통해서 수강생들 여러분이 배움의 기쁨을 느끼고 나름의 고민을 심화시키는 성장의 경험을 하셨기를 소망합니다. 고대 그리스 텍스트를 읽으며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라는 표현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배움에도 적용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지혜로워지는 길은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잘 묘사하듯) 어려움과 실패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배움과 성장이 소중한 것은---J. S. Mill이 훌륭하게 설명했듯---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진 잠재성을 발견하고 꽃피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가로막은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밀이 지적하듯) 최악의 폭정이자 횡포로 간주되어야 할 것 입니다. 개별성과 성장은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겠죠. 

   금요일 오후의 수업에 75명이나 되는 수강생이 등록하여 한 학기동안 함께 한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출한 과제들과 토론게시판에서 나눈 생각들을 읽으며 각각의 학생들이 수업주제에 관해 깊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큰 기쁨이었습니다. 모두의 열정과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 신중함과 겸허함, 절제된 태도의 중요성
우리 수업은 '폭력'의 현명한 사용의 필요성을 강조한 마키아벨리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애초의 의도는 '폭력의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혹은 오해되어온) 그 조차도 폭력의 신중하고 절제된 사용을 강조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만, 하워드 진 등을 읽고 수업을 준비하며 제 생각도 상당히 변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잔인함'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은 '현명함'의 범주로 설명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곳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잔인한 형태의 폭력이 '정치적 현실주의'의 모습을 띄며 진행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베버(그리고 마키아벨리와 월저)가 보여준 것처럼, 정치적으로 책임있는 위치에서는 도덕적 가치만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 늘 존재한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신중함과 겸허함이라는 덕목을 따르며, 무고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피해를 최대한 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도덕적 가치판단과 더불어 복잡한 정치현실에 대한 편협하지 않은 시각과 판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잔인함'이라는 최악의 정치적 악(political evil)에는 단호히 맞서는 용기도 필요할 것 입니다. 이같은 신중함과 현명함, 절제를 갖춘 이는---마틴 루터 킹이 잘 예시하듯---큰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베버가 강조하듯, 깊은 신념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3) 중간고사 리뷰
중간고사에서 우리는 J. S. 밀이 제시하는 '자유의 원칙'과 '사회성의 원칙'이 오늘날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논하였습니다. 많은 학생들께서 두 원칙이 서로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답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많은 답안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사회적 손실을 가져올 경우 (예컨대 지나친 음주가 사회의 풍속을 저해한다거나 생산성을 저하시킨다거나 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경우) 그러한 자유의 행사에 대해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반면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피해가 초래되는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보다 신중한 의견들도 제시된 바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경우가 밀의 자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에 입각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일부 타당성이 있으나 밀의 관점에서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으로 인한 경계의 대상이었죠. 만약,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간접적이지만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예컨대 마약의 남용)가 있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고 자유에 대한 제한도 경우에 따라 정당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유에 대한 제한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으며, 개인에게 여전히 합리적인 대안들이 선택가능해야 하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조건들이 반드시 따라와야 할 것 입니다.
   예컨대 백신을 의무화 하더라도 이에 대한 다양한 예외적 상황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 영업제한을 한다면 손실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와야 하겠죠. 이러한 조건이 기본 규범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자유에 대한 제한이 더욱 신중하고 절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근거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손쉽게 정당화되는 사회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4) 기말고사 리뷰
기말고사에서는 '극단주의'(extremism)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나 소셜미디어의 에코 체임버 효과, 그리고 공동체의 해체와 외로움의 확산 등을 연관시킨 좋은 답안들이 많이 제출 되었습니다. 한 가지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극단주의'는 언제나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 태도(self-righteousness)와 연결된다는 점 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경로들은 이같은 독선적 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항상 인식하고 이에 맞서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제출된 답안 가운데 '면대면 공동체'의 부활의 필요성을 강조해주신 대목이 있었습니다. 수업에서 다룬 내용 중에서는 한나 아렌트가 '신뢰할만한 사람과의 의미있는 교제'를 통해서만 우리는 거짓된 이데올로기가 아닌 진실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 부분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는 이러한 경험을 쌓아나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열심히 참여하고 경험하고 연대하고 소통하는 것이 우리 안의 편협함을 제어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5) 맺음말 
한 학기 동안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학기는 끝났지만 상담이나 조언, 도움 등이 필요한 경우 언제든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보겠습니다. 좋은 소식이나 고민들을 전해주셔도 좋습니다. 방학동안 머리를 식히며 읽고자 하는 책이 있다면 우치다 타츠루의 책들(특히 <스승은 있다>)을 추천드립니다. 민주주의와 관련해 더 교양을 쌓고 싶다면 뮐러의 <민주주의 공부>도 좋습니다. 강의계획서에 서평 추천도서들로 언급된 책들도 권장합니다. 그럼 모쪼록 건강하고 즐거운 방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말고사 성적공개 및 최종 챌린지 일정 등은 조만간 별도의 공지사항으로 올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