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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논문 소개

[출간논문 소개] "레이몽 아롱의 다원적 자유 개념에 관한 시론적 연구: 독단주의와 광신주의에 맞선 전후 지식인의 방향모색." <현대정치연구> 18(1), 89-115.

Minhyeok.Kim 2025. 5. 14. 09:4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200666

 

레이몽 아롱의 다원적 자유 개념에 관한 시론적 연구: 독단주의와 광신주의에 맞선 전후 지식인

이 논문은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이자 공공지식인이었으며 전후시기 프랑스와 유럽에 팽배했던 이념적 독단주의와 광신주의의 원인 및 해악을 냉철하게 분석하였고 현대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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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았던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지식인 레이몽 아롱의 정치사상을 '자유'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본 논문이 <현대정치연구> 최근호에 출간되었습니다. '독단주의'와 '광신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오늘날 극단주의가 광범위하게 전염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이하에는 아롱의 현재적 함의에 관해 논문의 <맺음말>에서 작성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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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맺음말: 아롱의 자유론의 현재성과 함의 
   아롱이 강조한 절제되고 신중하며 사려분별있는 자유주의적 에토스는 극심한 정치적 갈등과 내홍을 겪고 있는 우리 한국사회에서 과연 설 자리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롱의 품격있고 수준높은 형태의 자유주의는 우리에게 아직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떨어진 이상인 것일까? 지속되는 분단체제로 인해 냉전체제의 유산이 여전히 크게 머물러있으며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편협하고 왜곡된 형태의 ‘자유주의’를 오랫동안 경험한 역사로 인해 우리사회에서 자유주의 전통―특히나 전후(post-1945) 자유주의 전통―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높은 경계심에 사로잡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자유’라는 단어를 앞에 내세우며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반국가세력’이나 ‘체제전복 세력’으로 규정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핵심기관인 국회에 무장병력을 투입시킨 12·3 비상계엄사태(2024년 12월 3일)와 뒤이은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2025년 1월 19일) 등의 초유의 극단적 사태들은 독단화되고 광신주의화된 형태의 반공 권위주의가 ‘자유주의’라는 가면을 쓴채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계엄사령부 2024; 김동춘 2021; 이나미 2021).
   그러나 더 깊고 심각한 문제는 한국정치에서―그리고 나아가 세계 주요 민주주의 사회들에서―극단주의가 비단 특정 정파에만 해당하는 특수한 병리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민주적 정치과정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화와 타협, 최소한의 관용과 존중의 정신 등과 같은 기본적인 규범들에 대한 공격과 훼손이 우파 포퓰리즘을 필두로 한 다양한 형태의 ‘가짜 민주주의 세력’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갈등과 긴장의 수준이 높아진 자리에는 ‘헌법적 강경태도’(constitutional hardball)와 같이 정치적 상대방을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적(enemy)으로 규정하고 제도적 권한을 극한까지 밀어부쳐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극단의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도 2016-17년의 대규모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대대적인 ‘적폐청산’ 기조를 거치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주요 정치 진영들의 내부에서 ‘상호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 뚜렷하게 쇠퇴하였으며,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으로 절대화된 이분법적 사고가 주요 정치인들의 언어와 행동 속에서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빈번하게 지적되고 있다(차태서 2021; 황두영 2023; Levitsky and Ziblatt 2018; Müller 2022).
   이념적 광풍과 규범적 혼란의 시기의 한 가운데를 살아간 아롱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라는 단어가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유에 관한 에세이』 서문에서 그는 “자유의 적들에게는 자유가 허용되어서는 않된다”라는 그럴듯한 주장이 역사적으로 압제정(despotism)에 대한 정당화로 빈번히 오용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여러 중요한 구분점을 갖지만, 오늘날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충실히 보호되기 위해서는 ‘자의적 권력에 대한 제한’이라는 자유주의적 지향과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적 지향이 균형있게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롱의 이러한 시각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운데 하나의 절대적 우위성을 내세우거나 ‘자유민주주의’를 편협하고 교조적인 형태로―예컨대 ‘시장(market) 지상주의’나 ‘냉전적 반공주의’ 등의 형태로―이해하고 신봉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Aron 1970, 4-5). 
   또한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듯, 자유에 관한 아롱의 시각은 20세기 중반에 형성된 전후 자유주의 전통이 가진 넓은 지평과 깊은 윤리적 고려들을 보여주며, 특히 그가 제시한 ‘독단주의’나 ‘광신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과 자유에 대한 복합적인 접근은 극심한 이념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진지하게 참고하고 성찰해야 할 지점들을 던져준다. 아롱이 동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을 과열된 이데올로기적 열광으로 빠지게 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근대사회의 ‘유토피아적 이상주의’과 역사의 방향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에 대한 강한 욕구를 찾아내고 그것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듯, 오늘날 ‘자유’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들 역시도 변화된 정치적·사회적 조건과 미디어환경 속에서―특히 소셜 미디어가 우리 일상의 상당부분을 지배하게 된 환경 속에서―더욱 더 강화되는 독선주의와 광신주의의 경향성 및 폐단의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방안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광범위한 허위정보나 중독적 분노의 확산, ‘취소문화’를 통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등이 강화되며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문제들에 대한 최근의 중요한 논의로는 Rauch(2021)를 참고. 
   아롱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III장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듯) ‘자유주의’ 또한 이념적 광풍 앞에서 쉽게 교조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교조화된 신념은 맹목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목적의 추구 속에서 가치의 다원성과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상실시키고, 나아가 정치적 결단과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에 대한 조심성과 신중한 고려의 책임을 ‘대의실현’이라는 명분 하에 망각하게끔 만든다. 분량의 제약으로 인해 이 논문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이러한 형태의 극단화된 무규범적 결과주의를 아롱은 ‘저속한 형태(vulgar)의 마키아벨리즘’으로 지칭하며 비판한다. 관련된 논의는 Aron(1994, 53-63)을 참고. 
 이것이 바로 아롱이 깊게 우려하고 비판하였던 ‘과잉된 이데올로기적 신념’으로 인해 당대 지식인들의 정치윤리적 감수성과 도덕적 판단능력이 마비를 겪는 현상이었다. 내가―혹은 우리 진영이―옳다고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서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수단’을 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며 나아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이야 말로 ‘정치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는 소위 ‘마키아벨리즘’적인 결과지상주의적 현실주의는 양극화된 오늘의 우리 정치현실 속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을 뛰어넘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아롱은 이같은 ‘저속한’ 형태의 권력정치적(Realpolik) 시각은 참된 의미의 ‘정치적 현명함’보다는 이념적 ‘광신’이나 ‘독선’에 맞닿아있음을 일깨워준다.  
   글을 맺으며, 자유의 복합성과 (‘절제’를 중심으로 한) 반(反)극단주의적 에토스를 강조한 아롱의 자유관은 ‘자유’와 ‘독단’, 그리고 ‘광신’이 또 다른 형태로 결합되고 있는 지금 우리사회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절제’와 ‘사려분별’ 등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태도 역시 (어떠한 정치적 덕성과 마찬가지로) 모든 상황에 대한 절대적인 해법일 수는 없으며, 이는 구체적인 상황과 현실적 고려 속에서 판단되고 실천되어야 할 사항에 해당한다. 다만 오늘날과 같이 극단주의가 성행하는 시대에 ‘절제된 자유주의’가 갖는 중요성은 너무도 간과되기 쉬운 측면이 있으며, 이에 대한 아롱의 체계적인 고민과 논의는 절제의 에토스가 단지 개인윤리적 차원에서 강조되어야 할 덕목이 아니라 자유와 인간존엄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한 지향에 있어서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공동체 차원의 핵심 문제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