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경제학부 김재호 교수님의 파면을 요구하는 현수막 게시' 사태와 관련해 제가 <전대신문>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작성한 인터뷰 답변지 입니다. 이 사안에 대한 저의 생각이 담겨있어서 기록용으로 남겨놓습니다.
http://press.cnumedia.jnu.ac.kr/news/articleView.html?idxno=22255
1) 김재호 교수가 발간한 도서에 대한 생각
- 먼저, 저는 대학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결코 확정적이거나 다수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경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리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습니다.
- 물론 모든 자유가 그러하듯 ‘학문의 자유’ 또한 절대적인 지위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의도적인 왜곡 등의 연구윤리의 위반이라든가 아니면 학문활동이 타인에게 ‘명백하고 실질적인 피해’를 ‘직접적’으로 끼치는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에도 제한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논문을 발표해 큰 물의를 일으킨 하버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 사건의 경우 그가 다양한 측면의 연구윤리 위반이 동료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며 상당한 지탄의 대상이 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램지어 교수의 연구는 역사학자들이 보기에 주장을 입증할 역사적 근거를 적절히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증언을 허위인용하거나 왜곡인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학문의 진실성’을 위반했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과 규탄, 시정요구는 상당한 필요성을 같습니다.
- 하지만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김재호 교수님의 최근 저서 <Economic History of Korea: An Overview>의 경우에는 이같은 의도적 자료왜곡을 포함한 연구윤리 위반에 해당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지적된 바 없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와 큰 차이점이 있으며, 따라서 저는 이에 대하여 ‘파면’와 같은 학문공동체로부터의 완전한 배제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김재호 교수님의 저서를 ‘식민지배 미화’로 묘사한 올해 1월 1일자 MBC보도에 대해 저자 본인이 학교포털을 통해 구체적인 반박문을 제시한 바 있고, 저자와 방송사 사이에 왜곡보도 관련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입니다. 동료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학문적 연구성과가 그 구체적인 맥락이 잘려나간채로 언론보도에 의해 ‘친일’이라던지 ‘독재미화’와 같은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느낍니다. 제대로된 학문공동체라면 언론의 이같은 문제제기가 정당하고 정확한 것인지를 먼저 비판적이고 진지하게 검토하고 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 플래카드 게재 등 파면 촉구 행동에 대한 입장
- 이제 곧 종강이 다가오니 거의 한 학기 내내 교내 곳곳에 김재호 교수님의 파면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게시되고 있네요. 그 현수막들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프기도하고 무섭기도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일단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명예훼손으로 여겨지고요, 김재호 교수님 자신도 포털을 통해 상당한 괴로움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현수막의 표현 자체도 ‘규탄한다’거나 ‘비판한다’와 같은 표현이 아니라 ‘파면하라’라는 극도로 배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위험한 신호로 읽혔습니다. 포털에서 진행된 논쟁에서도 김재호 교수님에 대해서도 ‘본인이 자초했다’거나 ‘견디기 힘들면 떠나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시는 분들이 있어서 지켜보는 저로서도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학 본부 차원에서도 학내 구성원에 대한 ‘명예훼손성 현수막 게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세울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는 공간에 이같은 현수막이 붙어있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큰 고통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 또한 학문적 자유가 상당히 제약되기 때문입니다.
3)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한 의견
- 포털을 통해서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었고 꾸준히 공론화가 되고 있으며 진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그나마 작은 희망을 느낍니다. 그리고 <전대신문>측에서도 취재를 통해 이 사안의 다양한 측면을 보도하고자 한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저는 토론이 없는 대학은 죽은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논쟁적인 사안일수록 공개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마련해야 할 것 입니다. 포털에서도 공개토론의 제안이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해서 매우 아쉬웠습니다. 김재호 교수님의 연구성과물에 대한 토론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인 학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견들이 많이 제시되었습니다. 저 역시 여러 교수님들의 글을 통해서 제가 가진 생각을 반추하고 사안의 복합성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그 어느때보다도 ‘상호이해’와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 바로 지금 이순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가 가진 확신을 조금 내려놓는 것, 상대의 주장에 차분히 귀를 기울여보는 것, ‘배제’보다는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치 양극화’라는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를 극복하는 첫 단추라는 생각을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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